연예인 발해 멸망 이후 대씨들이 사료에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 - 下[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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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75회 작성일 24-04-2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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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mkorea.com/6969129451

지난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발해의 중앙 왕족들이 발해의 후계국, 즉 발해부흥운동에 사실상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사료와 상황을 들어서 설명해 보는 항목입니다.



저번 글에서 언급을 했듯이, 발해는 그 창립 이후부터 멸망 직전까지 수많은 대씨왕족들을 나라의 운영에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병적으로 방계 왕족과 왕을 제외한 직계왕족들의 정치참여를 금하고 있는데요, 발해만이 유일하게 그것을 정통으로 벗어나고 있습니다. 발해의 왕권이 불안정한 시대라면, 아, 왕권이 불안정하니까 친족들을 등용해서라도 어떻게든 메꾸려고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현상은 이상하게 발해의 왕권이 그리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많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발해라는 국가의 종특으로 해당 상황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발해는 그 존속기간 내내 근왕파를 중심으로 한 파벌정치, 족벌정치를 주로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882년에 있던 것으로 강력하게 추정되는 정변 이후로는 이 상황이 완벽하게 들어맞고, 왕은 자신과 자신이 믿는 일가친족, 자신의 믿을 수 있는 신하들과 함께 정치를 한 것이 대놓고 드러납니다. 그래서 발해는 이상하게 타국과 다르게 대씨 직계,방계들의 정치기록이 매우 많으며, 이는 매우 이질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짧게 말해보면, 그렇게 밥 먹듯이 많이 등장한 대씨 왕족들은, 발해의 후계국에서 싸악 사라져 버립니다. 대씨 역시 하나의 성씨로서 번성하였을텐데, 왜 이리 발해 멸망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보이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검토해 보는 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발해 멸망 당시에 수도에 있던 직계왕족들은 거의가 대인선과 함께 거란으로 잡혀가서 대접받으면서 살았다.




우선 이 글의 시작점은 926년 1월 발해의 홀한성이 함락된 이후입니다. 이 일을 볼 수 있는 사료를 몇 개 보면,



『거란국지』 1권 中


-드디어 그 나라를 평정하고 그 임금(대인선)을 사로잡았다.



『요사』 2권 태조 야율아보기 中


-을유일에 회군했는데 대인선의 온 가족을 따라가게 했다. (중략) 신미일에 대인선을 호위하여 데려다가 황도 서쪽에

성을 쌓고 살게 했다.




『송막기문』 中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그 나라 왕 대인선을 멸하고 그의 호적장부에 적힌 1천여 호를 연땅으로 옮겨가서 전답을 주면서 부세를 바치게 하였다. 그리고 무역하는 장사꾼이나 관시에서는 세금을 징수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이 외에도 많은 자료들이 있지만, 우선 이 두개만 가지고 봐도, 거란이 홀한성을 함락시킨 후, 대인선과 그 가족, 즉 왕족들을 모두 사로잡아 거란으로 데려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발해는 대씨 왕족들을 이상하게,지나치리만큼 많이 등용하였으며, 이것은 발해 말기인 대위해-대인선 시기에 절정을 찍습니다.


하지만 이 대씨들, 정확히 말하면 대위해계, 대조영 방계 대씨들은 홀한성의 함락과 함께 거의 대부분이 붙잡혀

거란으로 강제이주 된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정황상 남은 대씨라고는 그나마 대인선의 친족이 아니라 압송을 면한 것으로 보이는(대야발계로 추정되는) 대소현이라던지, 일부 유민들, 그리고 발해 멸망 직후에 대병력을 이끌고 부여성을 공격한 발해왕제와, 정황상 발해왕제의 아들로 여겨지는 대광현과, 926년에 후당에 사신으로 간 대진림, 926년 7월에 후당에 사신으로 간 대소좌 뿐입니다. 그나마도 발해왕제와 대광현은 군경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926년의 거란 침공 당시 군을 이끌고 외부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거란으로 잡혀감을 피할 수 있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보통 왕족들은 그 국가의 수도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홀한성이 거란의 기습공격으로 함락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따라서, 이들을 제외한 대위해계(대조영 방계)발해 왕족 직계, 방계들이 몽땅 잡혀갔기 때문에 이후 발해의 부흥운동과

발해의 후계국들에는 대씨들이 나올래야 나오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대신 대위해-대인선 아래에서 세력을 키웠던 유력 세력들과 근왕세력들, 혹은 지방 유력세력이 대신하여 이후 발해부흥운동에서 나오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후당에 사신으로 간 대진림은 이후 후발해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934년 12월에, 대광현이 고려로 귀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뒤이어 귀부해 오기 때문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지는 현재 알 길이 없지만, 발해왕제와 대광현은 부여부 공격 이후로 철수하여 후발해를 세우고 거란에 항쟁을 계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진림은 후당에 다녀온 이후로 여기에 협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발해왕제는 이후 어찌 된 것인지 보이지 않으며, 대광현,대진림 역시 934년에 고려로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내투함으로서 결국 발해고토에 남은 구 대씨왕족 세력은 아예 사라지게 됩니다.



한편, 잡혀간 대인선과 그 일족들은 거란 땅으로 잡혀간 이후 후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으며, 거란 조정에 출사한

대씨들과, 거란의 왕족들과 결혼한 이들도 배출하는 등 거란 내에서 적응하며 순응하여 편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입니다. 발해고토와 관련도 없어지고, 발해와의 연결성 역시 계속하여 대대로 내려가며 희석되었을 것이며, 이들은 거란에 순응하여 거란 내에서 잘 살고 있었으니 굳이 발해고토까지 가서 발해후계국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발해 이후의 후계국들과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또한, 발해고토에서 거란의 침공과, 한 술 더 떠서 과거에 같은 집안이었던 여진(흑수말갈), 그 외 말갈의 침입을 받으면서 힘겹게 버티고 버티는 발해부흥세력에게, 거란에 가서 거란에 출사하고, 거란 황실의 인척,외척이 되기도 하는 등 흔히 말하는 '꿀을 빠는' 대씨 구왕족들을 좋게 볼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송막기문에 쓰여져 있는 내용을 보아도, 대인선을 비롯한 대위해계 대씨왕족들은 거란에 가서 성도 쌓고 갈고, 땅까지 받고 대우받으면서 살았습니다. 이후에는 거란의 황족들과 통혼도 하고, 심지어는 거란의 황후까지 배출하는 것을 보면 대씨 왕족들은 거란으로 잡혀간 이후에도 예우를 받으면서 거란 황실과 함께 섞여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나중에는 금나라 시대에도 금 황실과 연결되고 금 황실과도 결혼하는 등 금대까지, 발해국의 존속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요,금의 명망있는 귀족층으로 살아갑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게 작위를 받아서 편히 살았던 이왕가 같이 말입니다.(거란에서 출사한 발해 왕족 출신의 인물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발해 왕족들도 발해 고토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고 '발해국'의 왕족이라는 자각, 발해국의

소속이라는 감정이 많이 흩어지면서, 또한 발해인들 역시 점점 부흥을 포기하고 회의적으로 변하면서 발해 구왕족의

발해 부흥운동 출사는, 반쯤은 반란 식으로 충동적으로 일으킨 대연림의 경우를 제외하면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발해의 왕족인 대위해계 대씨들의 절대다수가 거란으로 잡혀가서 거란에 흡수되어 버리고, 그나마 남은 극소수의 대씨들은 이유모를 이유로 인해 발해고토를 이탈하여 고려로 가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발해인들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구심점과 중심점이 될 수 있던 구 발해왕족들의 부재로 인해 초반의 발해잔존세력이 그 탄력을 잃어버렸고, 결국 이 영향은 발해잔존세력이 점점 지지부진화되고, 후계국들이 의외로 오래는 갔지만 결국 본격적인 활동과 세력확장보다는 현상 유지 및 토착세력화가 되어버린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발해부흥운동이 주로 이루어진 발해고토는 서쪽으로는 거란(요), 동북쪽으로는 여진과 말갈세력, 남쪽으로는 고려라는 쟁쟁하고 큰 나라들이 분열 없이 확고하게 존재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탄력을 잃어 갔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200년에 걸친 발해잔존세력이 존재는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아무도 없을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낙담한 발해인들은 요에 적응하고 순응하며 살던지, 발해고토에서 가끔 쳐들어오는 요나라나 여진을 막으면서 조용히 살던지, 아니면 한숨쉬고 고려로 가버리던지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강요받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논제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분명 대씨 왕족들은 거의가 거란으로 잡혀갔기 때문에 부흥세력에 합류할 수 있는 인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왕의 동생인 발해왕제와, 발해왕제 혹은 대인선의 아들로 추정되는 대광현, 그리고 대위해계 대씨왕족이 분명한 대진림과 대소좌는 분명 존재했습니다.



이들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며, 부흥세력에 탄력과 정당성을 충분하게 덧붙여줄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이후로 소식이 없거나(왕제, 대소좌),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고려로 향해버립니다.(대광현,대진림) 존재만 해 주었어도 큰 힘이 될 이들이 왜 언급이 없는지, 그리고 왜 타국인 고려로 굳이 향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의 분석과 추론, 고찰이 필요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과연 적법한 왕족이며 정당성, 상징성으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광현이 왜 자신의 세력과 함께 발해고토를 달아나듯 떠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후세인들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현재 발해 후계국으로 알려진 후발해와 정안국, 오사국은 발해 멸망 이후부터 그들이 역사에 제대로 등장한 시기 이전이 베일에 싸여 있는데요,


그것을 알아 내야 이후의 발해 후계국들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 생각하는 저의 개인 생각은, 이 뒤로 이어질 발해 후계국들에 대한 분석글에서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 항목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부 대씨들은 진작에 고려로 달아났으며, 부흥운동의 실패와 잔존세력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고려로 향한 대씨도 존재한다.



이 항목 역시 위와 연결되면서 나름 발해 후계국들이 어렵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굳이 한개의 목차를 만들어서까지 설명할 정도로 분량이 많지는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같이 묶었습니다.



제가 쓴 발해멸망전 파트 중에 925년 반란설을 보시면,

발해가 멸망하기 전년도인 925년에 발해를 이탈하여 고려로 내투한 대씨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만 제 분석에 의하면 이들은 대위해계의 직계왕족이 아니라, 대야발계의 선왕계 구왕족으로 파악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쓴 글에서 제가 추측 분석을 했듯이, 이들은 925년에 발해가 거란의 맹공을 맞고 취약해진 틈을 타서, 기성 왕족인 대위해계에 반기를 들고 반란 내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제압당해서 휘하 잔존세력들과 함께 고려로 달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적어도 수백~수천의 인구를 데리고 고려로 달아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들은 반역패당일 뿐인데, 이들의 이탈이 왜 발해와 이후 발해 후계세력에 문제가 되는가? 라고 궁금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들 구왕족이 대위해계에게 882년 이후 정권을 빼앗기고, 그냥 권력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 행정관료로 있었다고

추측을 하지만, 꼭두각시일지라도 행정을 처리하고, 국정을 시킨대로 처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이들과 함께 최하 수백에서 최대 수천의 인구가 빠져나갔는데, 이 인구에 대야발계 대씨 관료들과 그 세력들이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에 만약 고려로 달아난 이들이 조금이라도 존재했다면, 이전 왕족이기도 했으며, 대부분이 정당성과 중대성의 관료인 이들이었던만큼 발해 부흥운동에 합류하였으면 도움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직계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928년에 고려로 무리를 이끌고 귀부한 대유범의 경우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알려지지 않은, 고려로 귀부한 대씨들이 좀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발해 멸망 이후 남은 세력들이 발해의 남은, 통제가능한 영토를 그러모아 후발해를 만든 것은 맞지만, 후발해는 그 과정 내에서 많은 다툼이 있었는지, 정작 부흥운동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씨왕족인 대광현과 대진림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고려로 귀부해야 할 정도로 내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소현과 같이 거란에게 굴복하여 동단국,거란 본국(요)에서 출사한 대씨들도 존재한다.




마지막 항목으로서, 한편으로는 만만찮은 대씨들이 거란에 흡수되고, 거란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1번 항목에서 대씨들이 발해부흥운동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 역시 이 이유가 어느 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해 고토에 있지도 않으며, 거란에 흡수되고 거란에 출사한 이들을 발해부흥운동에서

반겼을 리가 없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대인선 당시의 왕족인 대위해계 대씨왕족들은 절대다수가 거란에게 생포당해서

거란으로 끌려가 살았기 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예를 들어보면, 동란국의 좌차상을 맡아 일했다고 인증이 떡하니 되어 있는 대소현, 발해 왕의 후손으로서 거란에서 근무하다가 979년에 송 태종에게 귀부한 대난하, 요 경종의 발해출신 비인 대씨, 성종의 비인 대씨, 성종 통화 2년에 동경재상부 우평장사를 한 대인정, 요 성종 시기에 남부재상을 맡은 대강예, 요 수군지휘사였다가 대연림에게 투항한 다음 고려로 달아난 대도리경,요나라의 발해군 감문군으로 일하다가 고려로 달아난 대도행랑,1040년에 동경회례사로 임명되어 고려에 사신으로 간 대견제, 천조제 9년에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왕의 생일을 축하한 대영신,대중선, 요 도종-천조제 시기에 활동한 발해인 관료인 대공정, 천조제의 문비 대씨 등 대씨 왕족 출신으로 요나라에서 벼슬을 하거나 활동하고, 완전히 동화되어 살아간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대놓고 요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항쟁한 대연림, 대연정 형제와 그들의 친척인 대한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요나라에서 살면서 거란족들을 따르며 동화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발해 후계국, 부훙운동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출신만 발해인이지, 거란에서 사는 거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발해계 거란인'인 것입니다. 이들은 훗날 금의 발흥 이후에도 거란과 함께 싸우다가 함께 쓰러진 이들도 존재하며, 금을 도와서 거란을 몰아내는 데에도 어느정도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금에서 출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발해에서 활동하던 유명 성씨들과 고구려의 왕족 성씨인 고씨들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면, 발해가 너무 순식간에 멸망하고, 수도급습으로 인해 왕족과 귀족들 인프라가 한방에 박살이 났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국정에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번성하던 대씨 직계 왕족들은 발해 부흥운동에 도움을 줄 래야 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극소수 남아서 후발해에 합류한 것으로 보이는 대씨들 역시 얼마 가지 못하고 고려로 달아났으며, 이후에는 아예 정권 자체가 정안국으로 바뀌어 버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만약 대씨 왕족들 중에 확실하게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거나, 대인선 본인, 혹은 대인선의 부왕이 탈출하여 후발해를 세우거나 합류했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확고한 정통성을 지닌 인물이 이끄는 세력이 되기 때문에 정당함도, 정통성도, 이미지도. 모든 것을 챙길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발해에 합류한 소수의 대씨들(대광현, 왕제, 대진림, 대소좌)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강력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달아나거나 기록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들은 정통 왕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며, 대인선의 직계후손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대광현을 대인선의 아들이 아닌, 발해왕제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란이 물론 이러한 상황까지 전부 노리고 발해를 쳤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대씨 왕족 대다수를 잡아갈 수 있었다는 것은, 그저 시기가 잘 맞아 떨어지고, 불리한 다지선다로 인해 자충수를 두어버린 발해 정부의 판단 때문에 비교적 후방에 있는 수도가 한번에 털려 버렸으며, 그로 인해 얻은 부가효과, 부가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도라던지, 과정이 어땠던, 마음이 어땠던 간에, 대씨 왕족은 발해후계국들에 거의 합류를 하지 못했으며, 이는 결국 발해의 부흥운동, 후계국의 유지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었으면 되었지, 플러스가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한 것이나 질문사항, 나눌 이야기는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다음 글은 발해 후계국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방대하긴 하지만 사료가 별로 많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시간 역시 꽤 걸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재 사료 탐독을

하고 있는 중이며, 사료와 시기를 잘 이어서 생각해 본 결과, 흥미로운 내용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듯 합니다.






지금까지 쓴 글들



발해멸망전 관련


발해멸망전 고찰 1편. 멸망의 전조

-https://www.fmkorea.com/6837781243


발해멸망전 고찰 2편. 925년 이전의 발해 정치상황

-https://www.fmkorea.com/6840383814


발해멸망전 고찰 3편. 공백의 5년(913~918)

-https://www.fmkorea.com/6841829328


발해멸망전 고찰 4편. 918~924년까지 발해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상편)

-https://www.fmkorea.com/6844051571


발해멸망전 고찰 4편 (하편)

-https://www.fmkorea.com/6844149065


발해멸망전 고찰 5편

-https://www.fmkorea.com/6846820595


발해멸망전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상

-https://www.fmkorea.com/6849396028


발해멸망정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하

-https://www.fmkorea.com/6850618504


발해멸망전 고찰 7편 - 마지막 순간(상)

-https://www.fmkorea.com/6862001225


발해 멸망의 의문점 고찰 상

-https://www.fmkorea.com/6865875091


발해멸망전 고찰 7편 - 마지막 순간(중)

https://www.fmkorea.com/6866011369


발해멸망전 고찰 7편 - (하)

-https://www.fmkorea.com/6867818441


발해 멸망전 고찰 8편 - 상

-https://www.fmkorea.com/6885806282


발해 멸망전 고찰 8편 - 하

-https://www.fmkorea.com/6965885593


발해 멸망 이후 대씨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 - 상

-https://www.fmkorea.com/6969129451





발해멸망전을 제외한 다른 글들



5경 15부 62주에 대한 오류 가능성 검토

-https://www.fmkorea.com/6797762364


발해 국호는 발해가 맞습니다

-https://www.fmkorea.com/6801049872


무왕과 대문예의 형제싸움으로 인한 나비효과

-https://www.fmkorea.com/6804185836


발해사 최대의 미스터리, 882년 정변설

-https://www.fmkorea.com/6807940225


'886년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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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장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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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서열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2375697


전설과 설화로 살펴본, 발해 문왕 시기의 어두운 면

-https://www.fmkorea.com/6814511926


발해 멸망의 시발점, 폐왕 대원의의 정변 (1)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mystery&category=15037454&document_srl=6817289827


대원의 정변 2편

-https://www.fmkorea.com/index.php?document_srl=6817562512&s_comment_srl=6817568874#comment_6817568874


문왕과 강왕의 관계에 대한 미스터리

-https://www.fmkorea.com/6817851720


폐왕이 문왕의 가족을 몰살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https://www.fmkorea.com/6817911871


대원의 정변 3편

-https://www.fmkorea.com/6819337509


대원의 정변 4편

-https://www.fmkorea.com/6820973328


대원의 정변 5편

-https://www.fmkorea.com/6821034193


발해의 군제

-https://www.fmkorea.com/6822795205


발해 선왕(상편)

-https://www.fmkorea.com/6824049857


발해 선왕(하편)

-https://www.fmkorea.com/6824625532


대이진의 찬탈 가능성에 대한 글

-https://www.fmkorea.com/6826837680


선왕과 대건황의 공통점

-https://www.fmkorea.com/6832473378


경박호와 모란강 전설로 본 대건황-대현석 시기의 불안

-https://www.fmkorea.com/6833752945


여러분이 발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12가지

-https://www.fmkorea.com/6892905999


발해에서는 과연 어떤 것이 났을까? 1편

-https://www.fmkorea.com/6894662330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2편

-https://www.fmkorea.com/6895694013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3편

-https://www.fmkorea.com/6903735052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4편

-https://www.fmkorea.com/6907296365


발해땅이 추워서 농사가 안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https://www.fmkorea.com/6914123453


사료로 알아보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의식

발해사신 수난기

대위해의 재위년도 오류 가능성

발해의 인구는 적다는 통설에 대한 반박

-https://www.fmkorea.com/696181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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